역사

인조 소현세자 죽음은 독살이었을까?

공룡 선생님 2022. 12. 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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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 [올빼미]가 개봉되었는데요. 이 글은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로 꼽히는 소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인조 소현세자 죽음은 독살이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소현세자 독살 썸네일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광해군 4년에 인조와 인열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훗날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고 소현세자는 14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됩니다.

소현세자는 인조 5년 말 강석기의 딸 강빈과 혼인을 하게 되고, 이후 병자호란이 발생합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다.

인조 14년 발발한 병자호란.

청나라에 치욕적으로 패배합니다. 청나라는 조선과 명나라와의 교류를 막을 목적으로 소현세자와 그의 동생 봉림대군을 함께 볼모로 잡아 인질로 끌려갑니다.

심양관 운영하며 조선인 노예를 구출하다

청으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고관들과 접촉하며 친분을 쌓고, 고급 정보를 인조에게 몰래 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인질이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아내 강빈의 권유로 심양 근처에 농장을 만들어 돈을 법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심양관으로 불립니다. 여기에서 번 돈으로 청으로 팔려온 조선인 노예들을 사서 구출하여 농장에서 일하게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인조의 미움을 받다.

이러한 노력들로 소현세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올라갔지만 인조 눈에는 자신의 위치를 넘보는 것으로 비쳤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인조의 견제를 사게 됩니다.

인조는 청나라에 굴복하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등 망신을 당해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청나라를 더욱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청나라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자신의 신하들(삼학사)이 참수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조와는 다르게 청나라의 힘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서양 신부 아담 샬로부터 신식 문물을 접하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아담 샬이라는 서양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천주교 신부였던 아담 샬은 과학적 지식과 서양 문물을 소현세자에게 전하기도 하는데요. 소현세자는 무조건 잘 사는 나라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청이든 서양이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선으로 돌아오다.

명나라가 드디어 청나라에게 의해 멸망됩니다. 더 이상 소현세자를 볼모로 묶어둘 이유가 없었던 청은 소현세자를 조선으로 돌려보냅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볼모로 잡혀 고생한 소현세자.

그렇게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인조의 반응은 싸늘 했는데요. 자신의 왕위를 소현세자가 노리고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지요.

갑작스러운 의문의 죽음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온 지 2달 뒤.. 소현세자는 사망합니다. 오한으로 인한 병을 치료받은 지 4일 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34세 젊은 나이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소현세자의 병명은 말라리아(학질)이었습니다. 학질은 대게 모기에 의해 발생하는데 증상은 오한, 발열 등이 있고,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 [조선왕조실록]에는 수상한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소현세자가 사망하기 전 침을 맞았고, 병세가 갑자기 나빠지면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당시 종실이던 진원군은 소현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소현세자 시신 상태가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신의 모습이 학질이 아닌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온몸이 검은빛이고, 이목구비 일곱 가지 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얼굴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볼모로 지내면서 병을 얻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확히 독살인지 아닌지 밝혀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의심스러운 상황이 많을 뿐이죠.

소현세자의 주치의는 이형익이라는 자였는데 그는 3개월 전 특별 채용되었던 자로 소현세자 내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첩인 조소용의 친정을 출입했던 자였습니다.

인조실록 편찬자도 소현세자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했고, 대신들 또한 이형익을 국문에 처벌하자고 했으나 인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장례 또한 세자 지위에 걸맞지 않게 간소하게 진행됩니다.

소현세자의 아쉬운 죽음

소현세자가 이렇게 죽지 않고 왕위를 계승했다면 조선의 미래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와 외교도 열린 마음으로 훌륭하게 했었고, 서양의 신식 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문명을 수용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른 죽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인조 소현세자 죽음 독살이었을까라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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