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며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 이방원의 아내이면서 이방원이 왕에 오르는데 목숨을 걸고 도움을 준 아내 이상의 역할을 했던 원경왕후인데요. 하지만 남편인 태종 이방원에 의해 원경왕후의 친정이 박살이 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원경왕후의 생애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아내 원경왕후 생애
원경왕후는 1365년 고려 공민왕 시기에 고려 최고 명문가였던 여흥 민 씨 가문의 수장인 민제의 3녀로 태어납니다.
어려서부터 '맑고 아름답고 총명하고 지혜롭다.'라는 평을 받으며 자라게 됩니다.
원경왕후는 18세의 나이에 16세였던 2살 연하의 이방원과 혼례를 치르게 되고, 4남 4녀를 낳습니다.
태종 이방원과 아내 원경왕후의 친정을 박살 내다
신혼 초 이방원은 처가살이를 하며 아내를 매우 사랑했고, 원경왕후 역시 신랑 이방원을 존중하며 부부금슬이 좋았습니다.
이방원은 아내 원경왕후와 함께 처가살이를 하며 장인과 아내의 사랑을 받으며 10년 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1392년.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원은 정안군으로, 아내 민 씨는 정녕옹주로 봉해집니다.
이때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구, 민무질 등은 이방원의 심복이 되어 활약하게 됩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려 할 때 모의에 참여하고, 제1차 왕자의 난이 발발하였을 때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후 결국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자신이 왕이 되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아내 원경왕후와 처가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데요.
왕이 된 이방원은 공을 세웠던 신하들을 매우 경계합니다. 특히 자신의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을 심하게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세자였던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장남 양녕대군과 친밀했기에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외척이 되어 권력을 행사할 것을 염려했던 태종은 이들을 가차 없이 유배 보낸 후 사약으로 죽이고 맙니다. 또한 민무구, 민무질의 다른 형제인 민무휼, 민무회도 역시 유배를 보낸 뒤 교수형으로 죽입니다.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는 자식들이 귀양을 가고 죽게 되고 가세가 기우는 것을 보고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과 아내 원경왕후의 갈등
남편 태종이 왕이 된 이후 여자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처가에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자와 놀이를 좋아했던 이방원.
원경왕후는 개인적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린 공이 큰 여걸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신들 앞에서도 태종에게 대드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원경왕후의 힘을 깎아내리기 위해 처가를 박살 냈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 씨.
4남 4녀를 낳을 만큼 사랑하는 부부였고,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비극적인 사건들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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