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수학자

수학자 이야기7-아르키메데스

공룡 선생님 2021. 5. 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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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사진

아르키메데스에 대하여

오늘은 목욕탕에서 옷도 입지 않은 채 "유레카"를 외치며 집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그가 어떤 시대의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자.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사람으로 그리스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문학자의 아들이었으며 젊었을 때기술적인 재능이 있었으며 이집트로 유학을 가 기하학을 배웠다. 그는 구와 원기둥에 관한 연구와 지렛대의 원리 응용에 뛰어난 기술자였다.

유명한 일화 "유레카"를 외쳤던 사연

앞서 잠시 언급했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어느 날 왕이 자신의 왕관이 순금으로 만든 것인지 은이 섞인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 보았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벌거벗은 것도 잊은 채 "유레카,유레카"를 외치면서 집으로 뛰어갔다고 한다. (유레카는 '알았다! 알아냈어!'라는 뜻이다.)


집에 돌아간 그는 금관과 같은 양의 순금덩어리를 물 속에서 달아 보았을 때 저울이 순금쪽으로 더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금관에 불순물이 섞였음을 알아내었다.

죽음에 관한 일화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대해서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중해를 둘러싸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전쟁이 한창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살고 있던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으로 로마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 아르키메데스는 70살이 넘는 고령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무기를 고안하여 로마를 공격하였다. 몇 년이 지나고 결국 시라쿠사가 함락되었고, 로마군의 사령관은 아르키메데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살려서 데려오라고 로마 병사에게 분부하였다.
아르키메데스는 모래판에 도형을 그리고 연구를 하고 있었고, 그 때 로마 병사가 이를 보았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그린 도형을 밟은 병사에게 도형을 밟지 말라고 소리 질렀고, 이에 격분한 로마 병사는 그가 아르키메데스인지 모르고 그를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묘비

앞서 디오판토스의 묘비명도 수학자로서 그럴듯 하였는데 아르키메데스의 묘비명도 이에 못지 않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의 업적 중에 원기둥과 구 사이의 관계를 알아낸 것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자신의 묘비에 새겨 달라고 했었고, 후대인들이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를 묘비에 새겼다고 한다.

 

이 구와 원기둥의 부피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반지름의 길이가 r인 구가 원기둥에 내접할 때 원기둥 밑면의 반지름은 r이고 높이는 2r이 된다. 따라서 다름이 성립한다.

 

미적분의 선구자 아르키메데스

미분과 적분. 고등학교에서 나오는 개념이지만 이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미분이라는 것은 접선의 기울기이고 적분은 면적을 구하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오늘날의 미적분 개념을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면적을 계산하고 원의 면적을 계산하였다.(그러나 이 원의 면적은 정확한 원의 면적이 아니라 근삿값이라는 한계가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정이십사각형, 정사십팔각형, 정구십육각형 면적을 계산하면서 그 계산 결과로 원의 면적을 구했다. 그러므로 이는 정확한 값은 아니고 근삿값이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정백각형, 정이백각형 등등 n의 값을 무한대로 계산한다면 정확한 원의 면적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적분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에 선구자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기원전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보았다. 다음 시간에도 또 다른 수학자를 만나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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