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실생활 수학

수학 이야기-숫자의 발달(원시시대 숫자/이상고의 뼈/잉카, 마야 숫자/ 아라비아 숫자)

공룡 수학 2022. 6. 15. 17:05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숫자의 발달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원시시대의 숫자

원시시대에는 수를 사용했을까요?

우선 원시시대라는 것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간을 말합니다.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돌을 깨트려 사용했던 구석기, 돌을 갈아서 사용했던 신석기, 청동을 사용했던 청동기, 철을 사용했던 철기 시대로 나뉘게 되지요.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동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많다', '적다', '줄어든다', '늘어난다' 등과 같은 간단한 수 감각은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상고의 뼈

1950면 아프리카 콩고에 에드워드 호숫가 근처에 '이상고'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래된 동물의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물 뼈에는 날카로운 것으로 새긴 듯한 눈금들이 있었습니다. 이 뼈의 이름을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이상고의 뼈'라고 부릅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뼈에 이렇게 눈금을 새겨 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즉 7이라는 숫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눈금을 7개 새기는 것이지요. 이런 동물 뼈가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잉카 사람들의 숫자 사용

15세기~16세기 초,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대의 페루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의 영토를 걸쳐 번성했던 잉카 제국에서의 숫자 사용은 어땠을까요?

잉카 제국은 금을 녹여 만든 황금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잉카인들은 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색실에 매듭을 지어서 의미를 전달하는 '키푸'라는 매듭을 이용한 문자였습니다. 키푸는 양털이나 솜으로 만든 1m 정도의 길이 굵은 끈에 여러 가닥의 또 다른 끈을 매달고, 여기에 색실을 엮어서 숫자와 정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매듭의 크기가 클수록 큰 수를 의미했고, 색실 위에서부터 밑으로 읽어 내려오게 됩니다. 실의 색의 위치, 길이 등에 따라 다른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야 문명의 숫자-20진법

1839년에 발견되어 1842년에 세상에 알려진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했던 왕국으로 큰 강을 끼고 발전했던 다른 문명들과는 다르게 울창한 밀림 지대에 번성했던 마야 문명.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보다 훨씬 이전에 피라미드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마야문명 유적지에서 글과 숫자가 적힌 책 4권이 발견됩니다. 여기에 발견된 문자들은 암호처럼 해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1975년 9살 소년이던 데이빗 스튜엇이라는 소년은 마야 문명 발굴 단원이던 아버지와 함께 발굴 현장에 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장난 삼아 돌조각이 무슨 뜻인지 해독해 보라 했고, 놀랍게도 데이빗은 그 글을 해독하게 됩니다. 이후 데이빗은 12살에 첫 논문을 발표하고 현재는 텍사스 대학에서 마야 문명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야 문명에서 놀라운 점은 0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1은 ●로 나타내고, 5는 ㅡ로 나타냅니다.

 

 

 

아라비아 숫자의 사용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1,2,3.. 과 같은 아라비아 숫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400년경입니다.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인도 사람들이 발명하고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럽으로 전하여 인도-아라비아 숫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어떻게, 언제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역이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유럽으로 전해졌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14세기경 알-콰리즈미의 책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유럽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도-아라비아 숫자 덕분에 사칙연산뿐만 아니라 복잡한 계산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