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신정변 원인과 배경- 정중부, 이의방, 이고

공룡 선생님 2022. 11.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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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의 놀이터였던 고려 개경 보현원에서 일어났던 무신정변. 이 글에서는 무신정변 원인과 배경, 무신정변을 이끌었던 정중부, 이의방, 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신정변 썸네일

무신정변 원인과 배경

1170년 경인년에 일어나 '경인의 난'이라고도 불리고, 당시 상장군이었던 정중부가 이끄는 무신들이 일으켰기에 '무신의 난'이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고려는 '숭문천무' 사상으로 문신을 숭상하고 무신을 천시하는 사상이 팽배했습니다. 토지 분배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았는데요. 이로 인하여 무신들의 생활고는 심해져 갔습니다.

 

고려 의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방탕하게 놀기만을 좋아했습니다. 의종은 자신이 놀러 갈 때 무신들을 먼길까지 끌고 다니고 먹을 것을 주지도 않고 호위나 서게 합니다. 그러다가 무신들의 화를 참지 못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한참 어린 문신인 '한뢰'가 당시 대장군이고 나이가 61세이던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무신정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정중부, 이의방, 이고

정중부, 이의방, 이고는 무신정변을 이끌었던 인물들인데요. 이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고

1170년 8월 정중부와 이의방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이끕니다. 무신정변 때 수도 개경으로 들어가 한뢰 등 무신 50명을 죽이면서 문신들을 모두 죽이자고 했지만 정중부의 만류로 이를 그만둡니다.

 

이고는 자신이 무신정변의 공이 있었지만 다른 무신들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불만을 품어 1171년 1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모반을 꾸밉니다. 거짓으로 제서를 꾸몄고 태자의 관례를 위해 태자궁에서 연회가 열리고, 이것을 계기로 이의방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의방이 알게 되면서 이것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이고는 궁문 밖에서 이의방의 철퇴에 맞고 목숨을 잃습니다.

 

이의방

이의방과 정중부는 성향 차이가 확연했습니다. 이의방은 문관들을 모조리 죽이자는 강경파였지만 정중부는 온건파였습니다.

무신정변 초기에 지지를 얻는 듯하였으나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의종을 시해합니다. 이로 인하여 당시 조정 여론이 악화되고 개경 승도의 난, 조위총의 난 등이 연달아 터지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의방은 정적들을 없애면서, 자신의 딸을 왕태자와 정략결혼까지 시키려고 하는데요. 이러한 계속된 전횡으로 말미암아 이의방은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과 그의 사주를 받았던 종참 승려 등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정중부

<고려사> 기록에 보면 그의 외모는 우람하고, 눈동자는 네모지며, 이마가 넓다, 얼굴은 백옥 같고, 수염이 아름답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거구의 미남이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방을 중심으로 독재권을 행사하는데요. 초기 집권 무신들이 권력 기반이 약하여 중방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습니다. 무신정변 초기 권력을 잡았던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무신정변 원인과 배경, 무신정변을 이끌었던 인물 정중부, 이의방, 이고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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